0/0
김시습 - 금오신화
(전라도) 남원에 양생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어버이 를 잃은 데다 아직 장가도 들지 못했으므로 만복사(萬福 寺)의 동쪽에서 혼자 살았다.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 가 있었는데, 마치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었다. 마치 옥 으로 만든 나무에 은조각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양생 은 달이 뜬 밤마다 나무 아래를 거닐며 낭랑하게 시를 읊었는데, 그 시는 이렇다. 한 그루 배꽃이 외로움을 달래 주지만 휘영청 달 밝은 밤은 홀로 보내기 괴로워라. 젊은 이 몸 홀로 누운 호젓한 창가로 어느 집 고운 님이 퉁소를 불어 주네. 외로운 저 물총새는 제 홀로 날아가고 짝 잃은 원앙새는 맑은 물에 노니는데, 바둑알 두드리며 인연을 그리다가 등불로 점치고는 창가에서 시름하네. 시를 다 읊고 나자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