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남원에 양생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어버이
를 잃은 데다 아직 장가도 들지 못했으므로 만복사(萬福
寺)의 동쪽에서 혼자 살았다.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
가 있었는데, 마치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었다. 마치 옥
으로 만든 나무에 은조각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양생
은 달이 뜬 밤마다 나무 아래를 거닐며 낭랑하게 시를
읊었는데, 그 시는 이렇다.
한 그루 배꽃이 외로움을 달래 주지만
휘영청 달 밝은 밤은 홀로 보내기 괴로워라.
젊은 이 몸 홀로 누운 호젓한 창가로
어느 집 고운 님이 퉁소를 불어 주네.
외로운 저 물총새는 제 홀로 날아가고
짝 잃은 원앙새는 맑은 물에 노니는데,
바둑알 두드리며 인연을 그리다가
등불로 점치고는 창가에서 시름하네.
시를 다 읊고 나자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