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시 사년급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내려쪼이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면서 안동
김장로의 집으로 간다. 김장로의 딸 선형(善馨)이가 명년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하여 영어를 준비할 차로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씩 가정교사로 고빙하여 오늘 오후 세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음이라. 이형식은 아직 독신이라, 남
의 여자와 가까이 교제하여 본 적이 없고 이렇게 순결한
청년이 흔히 그러한 모양으로 젊은 여자를 대하면 자연
수줍은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확확 달며 고개가 저절로 숙
여진다. 남자로 생겨나서 이러함이 못생겼다면 못생겼다
고도 하려니와, 여자를 보면 아무러한 핑계를 얻어서라도
가까이 가려 하고, 말 한마디라도 하여 보려 하는 잘난
사람들보다는 나으리라. 형식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우선 처음 만나서 어떻게 인사를 할까. 남자 남자 간에
하는 모양으로, ‘처음 보입니다. 저는 이형식이올시다’ 이
렇게 할까. 그러나 잠시라도 나는 가르치는 자요,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