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은 묵적골(墨積滑)에 살았다.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
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
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
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
엇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