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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향 - 뽕
1 안협집이 부엌으로 물을 길어 가지고 들어오매 쇠죽을 쑤던 삼돌이란 머슴이 부지깽이로 불을 헤치면서, "어젯밤에는 어디 갔었습던교?" 하며, 불밤송이 같은 머리에 왜수건을 질끈 동여 뒤통 수에 슬쩍 질러맨 머리를 번쩍 들어 안협집을 훑어본다. "남 어디 가고 안 가고 님자가 알아 무엇 할 게요?" 안협집은 별 꼴사나운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암상스러 운 눈을 흘겨보며 톡 쏴버린다. 조금이라도 염량이 있는 사람 같으면 얼굴빛이라도 변 하였을 것 같으나 본시 계집의 궁둥이라면 염치없이 추근 추근 쫓아다니며 음흉한 술책을 부리는 삼십이나 가까이 된 노총각 삼돌이는 도리어 비웃는 듯한 웃음을 웃으면서, "그리 성낼 게야 무엇 있습나? 어젯밤 안쥔 심바람으 로 님자 집을 갔었으니깐두루 말이지." 하고 털 벗은 송충이 모양으로 군데군데 꺼칫꺼칫하게 난 수염을 숯검정 묻은 손가락으로 두어 번 쓰다듬었다.